차기철 인바디 대표 / 사진=김병언 기자

 

차기철 인바디 대표 / 사진=김병언 기자
인바디는 연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차기철 대표가 체성분 분석기를 상용화하기 위해 1996년 세운 의료기기 기업이다. 체성분 분석기는 신체의 4대 구성 성분인 수분, 단백질, 무기질, 지방의 비중을 측정해주는 의료기기다. 최근엔 신체 부위별 체수분 분포도, 기초대사량, 부종 여부 등을 측정하는 기능까지도 포함한다. 이 의료기기는 영양 균형 상태를 확인하거나 비만 여부, 각종 질병의 예후 및 치료 효과를 확인할 때 쓰인다.

이 회사가 체성분 분석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데엔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출범 당시 이 회사의 사명은 인바디가 아닌 ‘바이오스페이스’였다. 세계시장에선 새로 이름을 알려야 하는 ‘신참’ 기업이었다. 기술력이 있더라도 인지도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 회사는 전문가용 체성분 분석기를 ‘인바디’라는 브랜드로 통합한 뒤 2014년 사명도 인바디로 통일하며 브랜드 위상을 확고히 다지는 데 성공했다.

 

[8점 터치식, 고주파 분석으로 제품 차별화]

인바디가 세계시장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2000억 원 규모인 전문가용 시장이다. 이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다. 일본 의료기관에서 쓰이는 체성분 분석기의 90% 이상이 이 회사 제품이라는 게 차 대표의 설명이다. 일본 타니타처럼 건강검진용 의료기기에서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현지 기업이 존재하는 가운데 낸 성과다. 인바디 제품을 활용한 체성분 분석 관련 논문만 1000여 편이 넘는다.

인바디가 세계시장에서 이름값을 높였던 데엔 세계 최초로 내놨던 8점 터치식 전극법이 큰 힘이 됐다. 체성분 분석기는 손과 발 등에 부착한 전극에서 내보내는 전류가 신체를 지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압차를 확인해 신체 내 구성 성분을 측정한다. 신체 구성 성분마다 수분 함유량이 달라 전압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과거 체성분 분석기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에 각각 2개씩 전극을 배치하는 4점 터치식이었다. 특정 부위보다는 사람의 몸을 1개의 단위로 간주하고서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인바디는 전극을 양손과 양발 각각에 2개씩 배치하는 8점 터치식을 도입해 팔, 다리, 몸통 등을 각각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8점 터치식을 이용하면 측정 자세가 바뀌거나 여러 번 측정해도 항상 동일한 지점에서 측정이 시작돼 재현성이 높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재현성은 일정한 시간 동안 반복 측정할 때마다 같은 결과값이 나오는 정도다. 예컨대 측정할 때마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키는 재현도가 높은 반면 측정값이 쉽게 달라지는 혈압은 재현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인바디는 재현도를 모두 높여 고성능 제품 수요가 뚜렷한 전문가용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인바디는 체성분 측정에 쓰는 전류의 진동수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진동수가 높아지면 신체 구석구석까지 전류가 훑고 지나가게 돼 더 세밀한 체성분 측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주파는 공중으로 쉽게 흩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체외에서 들어오는 빛과 전기신호 등의 영향을 받기 쉬워 측정 데이터의 오염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생긴다. 인바디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측정 알고리즘을 함께 개선해 외부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3MHz 고주파로 체수분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만성질환자 대상 가정용 시장 공략]

인바디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가정용 체성분 분석기 시장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가정용 체성분 분석기의 세계시장 규모는 1조5000억 원 수준으로 전문가용 시장 규모의 7배가 넘는다. 이 회사의 가정용 제품 매출은 62억 원 수준으로 지난해 전체 매출(1071억 원)의 6% 수준에 그쳤다. 가정용 제품 매출을 해마다 5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인바디가 가정용 시장에 도전을 안 하고 있던 건 아니다. 이미 내놨던 제품이 있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정용 제품은 체중계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식이요법이나 운동 관리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대당 20만 원이 넘는 고성능 제품보다는 10만 원 미만 저가 제품 수요 위주로 시장이 형성됐다. 인바디 입장에선 전문가용 제품 시장이 커가는 상황에서 영업이익률이 낮은 보급형 제품을 내놓을 만한 유인이 크지 않았다.


앞으로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원격진료 수요가 늘어나면서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고성능 가정용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차 대표는 “체성분 분석을 통해 예후를 판단할 수 있는 적응증의 가짓수를 늘리고 있다”며 “혈액순환 기능 및 신장 기능이 떨어지거나 폐부종이 생기는 경우, 유방암 수술 후 부작용으로 임파부종 등이 나타나는 경우 체수분 변화량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건강 이상을 조기에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재현도 높인 혈압계로 시장 판도 바꾼다”]

혈압계는 인바디가 눈여겨보는 다음 시장이다. 세계 혈압계 시장은 3조 원 규모다. 이 시장을 일본 옴론헬스케어가 절반가량 점유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판도를 뒤엎기 위해선 기존 제품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신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인바디는 재현도를 대폭 끌어올린 혈압계를 개발하고 있다. 키나 몸무게처럼 측정한 시점이 비슷하면 같은 혈압 값이 나오는 제품을 출시해 기술력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전자동 혈압계는 압력 센서를 이용한 오실로메트릭 방식이다. 공기압을 가해 혈관 흐름을 막은 뒤 다시 공기압을 낮춰 혈관이 열렸을 때 생기는 진동의 크기를 감지해 혈압을 측정한다. 자세나 외부 환경이 바뀔 때마다 혈압이 다르게 나오는 게 단점이다.

인바디는 아예 다른 방식을 적용해 자세가 바뀌더라도 일정한 값이 나올 수 있는 혈압계를 개발 중이다. 정확한 혈압 수치를 적용하면 임상이나 질병 예후 판단에서 쓰이는 혈압 데이터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차 대표는 “기존 혈압계는 재현도가 낮다 보니 정상 혈압 범주에 드는 값이 측정됐을 때의 혈압을 자신의 혈압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며 “재현도가 높은 제품이 나오면 혈압 이상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고 말했다.

인바디는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혈압계 사업만 따로 떼어내 분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바디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혈압계 제품군을 정비해 체성분 분석기에서의 브랜드 구축 역량을 다른 사업군에서도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꺾였던 매출 성장세도 올해엔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차 대표는 “가격경쟁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대기업 등 시장 진출 전략이 탄탄한 후발주자에게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있다”며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어야만 가격경쟁에 매몰되지 않는 제품으로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사 원본 URL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110202005i